삼성라이온즈21 | 가을의 전설(2002)

국민들로 부터 사랑받는 팀, 근성있고 호쾌한 야구를 하는 팀!

한국 시리즈

2002년 4월 5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개막전 모습. 4월 27일 광주 기아전, 선발투수 라형진의 투구 모습. 4월 24일 대구 현대전에서 1회말 좌중월 2점 홈런(6호)을 날리고 있다. 2002년 이승엽은 홈런 47개로 또다시 홈런왕을 차지했다. 5월 1일 마해영(프로통산 26번째)과 이승엽(프로통산 27번째)의 1,000안타 달성을 기념하여 신필렬 대표이사와 이상국 KBO 사무총장(오른쪽)이 시상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5월 5일 수원에서 열린 현대전에서 전병호가 역투하고 있다. 삼성은 이날 승리로 2,387경기만에 프로 첫 1,300승을 거둔 팀이 됐다. 5월 12일 잠실 LG전, 양준혁이 1회초 1사 2, 3루 상황에서 좌중간 2루타를 치고 있다. 삼성이 시즌 첫 1위에 오르던 날. 5월 11일 잠실 LG전에서 이승엽의 13,14호 홈런이 터지자 삼성 서포터즈들이 열광하고 있다. 5월 21일 광주 기아전, 7회말 무사 2루에서 기아 김창희의 중전안타 때 2루주자 신동주가 홈아웃되고 있다. 포수 진갑용. 7월 21일 잠실 두산전, 이승엽이 슬라이딩으로 홈에서 세이프되고 있다.

절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꿈★은 이루어졌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때까지 하늘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했던 좌절의 19년. 그러나 통한의 세월은 2002년 11월 10일 대구구장에서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짜릿한 드라마와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9회말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마해영의 챔피언 홈런이 터지는 순간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켜보기 위해 대구구장을 가득 메운 1만2천명의 가슴에서는 환호와 격정이 용솟음쳤고, 눈가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7전8기는 신화 그 자체였다. 프로야구 21년동안 매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면서도 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빼고는 한국시리즈와 전혀 인연을 맺지 못했던 삼성. 지난해까지 기다림에 지친 팬들은 희망보다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혔고, 일부 호사가들은 "삼성은 절대 대구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서슴없이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삼성의 2002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온갖 비난과 비아냥을 견디며 20년 동안 묵묵히 뿌린 씨앗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2 시즌, 삼성의 출발은 남달랐다. 다른 구단들은 저마다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새해를 맞았지만 삼성은 큰 부담감을 안고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해 14년에 페넌트레이스 1위를 하고도 한국시리즈에서 좌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선수단과 프런트는 여느 해와는 다른 다짐과 각오로 새해를 열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20년 무관(無冠)의 한풀이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실패한 직후였다. 먼저 왼손 거포 양준혁을 영입했다. 양준혁은 1993년 삼성에 입단한 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98년 해태로 트레이드, 2000년에는 다시 LG로 이적하는 등 부침을 겪은 불운의 스타. 김응룡 감독은 9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한 '타격 달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김감독과 양준혁은 2년 동안 해태에서 한솥밥을 먹은 스승과 제자였다. 93년 신인왕에 오르며 영원한 삼성맨을 자처했던 양준혁은 자유계약선수로 4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뒤 "삼성을 우승시키는 데 남은 야구인생을 걸겠다."며 굳게 다짐했다.
양준혁 영입에 성공한 삼성은 두 번째로 왼손투수와 유격수 보강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임창용, 노장진, 배영수, 김진웅 등으로 이어지는 오른손 투수는 8개 구단 통틀어 수준급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왼손 투수는 빈약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실패의 원인 중 하나도 왼손투수 부재를 꼽을 수 있었다. 타력을 겸비한 유격수 영입도 시급한 문제였다. 주전으로 김태균이 있었지만 수비솜씨에 비해 타격이 떨어져 하위타선에서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때마침 신생팀 SK가 선수 보강을 위해 삼성에 러브콜을 보내왔다. SK는 쌍방울 출신의 왼손거포 김기태와 투수 김상진, 김태한, 이용훈, 내야수 정경배, 포수 김동수 등을 탐냈고 삼성은 검증된 외국인 유격수 브리또와 왼손 투수 오상민을 요구했다. 12월 20일 사상 최대의 트레이드는 성사됐다. 당신 전문가들 사이에선 의견이 엇갈렸다. 삼성이 11억원 얹어 받았지만 전력감을 내줬기 때문에 손해를 봤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한 세대교체를 단행, 끈기있고 근성있는 팀으로의 탈바꿈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 선수단 정비는 끝났다. 그러나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김응룡 감독의 카리스마였다. 해태시절 한국시리즈 9전 전승의 대위업을 달성했던 김감독은 삼성으로 이적한 첫해 한국시리즈 전승신화가 깨짐으로써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해태의 빨간 유니폼을 벗고 삼성의 파란 유니폼을 입었던 2000년 10월 30일 "삼성의 개인주의를 뿌리뽑겠다"고 공언했던 김감독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선수단을 장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김감독 특유의 카리스마는 미국 애리조나에 이어 일본 오키나와, 도쿄로 이어지는 전지훈련에서 되살아났다. 타협은 없었다. 오로지 김감독의 서슬 퍼런 명령만이 있었다. 김감독은 전지훈련 내내 식탁에서 김치를 제외시켰다. 체력 보강을 위해 고기만 먹기를 강요했다. 또 훈련장에서는 강훈련만이 있었다. 느릿느릿 걷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김감독의 눈밖에 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애리조나에 이어 두 번째 훈련지인 오키나와에서 한 선수가 연습경기 도중 교체되자 성질에 못이겨 방망이를 집어던졌다. 계속되는 전지훈련에 지친 속풀이쯤으로 이해할 만도 했다. 그러나 김감독은 곧바로 귀국행을 지시했다. 긴장감이 떨어진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였던 셈이다. 그 선수는 김감독 방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하지만 김감독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고참 선수들이 찾아가 용서를 구한 덕분에 그 선수는 간신히 귀국행을 피했지만 시범경기 내내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경산 볼파크에서 근신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같이 김감독은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를 통해 선수단을 장악하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구축했다. 미국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무려 50일 넘는 전지훈련의 성과는 시범경기에서 가능성을 보였다. 7승 4패로 현대와 함께 공동 1위. 하지만 시범경기는 그저 시범경기에 불과했다. 4월 5일 LG와의 2002시즌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산뜻하게 출발했지만 정규시즌은 내내 살얼음판 위로 걷는 곡예의 연속이었다.

시즌 초반, 예상했던 전력에 차질이 빚어졌다. 갑작스런 외국인선수의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선수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김진웅과 배영수가 동반 부진을 거듭했다. 선발에서 마무리로 변신한 김진웅은 경험부족을 드러내며 번번이 무너졌다. 제 2선발로 평가됐던 배영수도 지난해와 같은 위력적인 피칭을 못했다. 더욱이 SK에서 이적한 왼손 오상민도 김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김응룡 감독의 용병술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김감독은 마무리 김진웅을 빼고 노장진을 마무리로 돌리는 극단의 처방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올시즌 전망을 불투명하게 보기 시작했다. 이런 예측은 페넌트레이스 순위싸움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8월부터 1위를 독주했던 지난해와 달리 삼성은 올해는 5월 1일까지 4위에서 맴돌았다.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5월 2일 대구 두산전을 14-2로 이겨 3위에 오른 삼성은 6연승과 함께 2위에 오른 뒤 잠실에서 LG를 제물삼아 개막전 1위 이후 처음으로 단독선두로 솟구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기아의 돌풍에 휩쓸려 6월 중순까지 엎치락뒤치락 숨막히는 선두싸움이 계속됐다. 선두로 나서지 못하자 커다란 시련이 찾아왔다. 6월 28일부터 7월 9일 7연패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제 1선발 임창용은 물론이고 누구도 구세주가 될 수 없었다. 특별히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더 큰 걱정이었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프런트는 "이렇게 무너지는가."하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7월 10일 수원에서 가까스로 연패를 끊고 한숨을 돌린 삼성은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이승엽과 마해영이 이끄는 타선은 점차 기운을 차렸고 무엇보다 마운드에서 희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이어 또다시 외국인선수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5월 중순 입단한 새로운 외국인 투수 엘비라는 마운드의 희망으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왼손 엘비라는 변화무쌍한 칼날 같은 제구력을 앞세워 승리의 보증수표로 자릴 굳혔다. 마운드에서는 엘비라, 유격수에는 브리또, 오랜만에 외국인 투타가 힘을 냈다.

주춤했던 승수쌓기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7월 13일부터 31일까지 9승 2패를 기록하며 3위그룹을 멀찍이 따돌리고 본격적으로 기아와 선두다툼을 벌였다. 김응룡감독은 일찌감치 총력전에 나셨다. 노장진이 비록 구원투수지만 승산이 높다고 판단되면 이닝에 관계없이 투입했다. 이같은 총력전을 두고 일부에서는 "삼성이 내일이 없는 야구를 한다."며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김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할 수 있는 페넌트레이스 1위와 플레이오프를 벌여야 되는 2위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김감독은 시즌이 예년과 달리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춘추전국시대'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예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총력전의 부작용은 군데군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위력은 7연패에 버금가는 위기였다. 당장 노장진이 많이 지쳐 있었다. 여기에 선발진도 난조를 보이면서 로테이션이 무너졌다. 엘비라와 임창용을 제외하곤 내세울 선발투수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8월이 들어 내린 집중호우로 인해 사자군단은 충분한 휴식을 가졌고 재정비를 마친 선수단은 기력을 회복, 잇따른 승전보를 전했다. 삼성은 9월 10일부터 무섭게 치고 나갔다. 대구와 잠실에서 번갈아 열린 LG와의 3연전을 쓸어담는 것을 시작으로 부산아시안게임 휴식간을 징검다리 삼아 10월 12일까지 15연승을 기록했다. 이는 1986년 삼성이 달성한 프로통산 최다연승인 16연승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역대 2번째 최다연승 기록이었다. 연승행진을 벌이는 동안 호시탐탐 노리던 선두를 빼앗았다. 9월 13일 기아와 공동선두를 이룬 뒤 삼성이 경기가 없는 16일. 기아가 현대에 패하면서 단독 1위로 올라셨다. 99일만의 단독 선두였다. 그리고 10월 17일 부산 롯데전. 임창용까지 투입하는 초강수를 띄운 끝에 8-3의 승리. 기아를 2.5게임차로 따돌리면서 2년 연속 부산에서 페넌트레이스 1위와 함께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었다. 꼭 130차전만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사직구장 어디에서도 페넌트레이스 1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요란했던 자축행사는 온데간데 없고 덕아웃에 걸린 축하 플래카드 한장만이 바람따라 흐느적거렸다. 창단 이후 8번째 맞는 한국시리즈. 지난해의 아픔을 딛고 21년만에 한풀이를 할 수 있는 절대 기회였다. 더욱이 상대는 정규시즌에서 치열한 순위싸움을 벌이며 간신히 4위에 오른 LG. 그러나 부담을 느낀 쪽은 지난해 정규시즌 3위팀 두산에게 어이없는 패배를 당한 삼성이었다. 꼭 1년 전과 비슷한 상황. LG는 준플레오프에서 현대를 2연승으로 꺾은 뒤. 플레이오프에서 기아를 3승 2패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올랐기 때문에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전문가들은 전력차가 커 1차전만 이기면 삼성의 4연승도 가능하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김응룡 감독이나 프런트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김감독으로서는 야구인생이 걸린 한국시리즈였다. 또 다시 무릎을 꿇는다면 29년 동안 쌓아올린 명성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것이고, 유니폼을 벗는 일까지 생길 수 있었다. 구단도 확실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한국시리즈를 준비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가 시작되기도 전에 화려한 우승 축하이벤트를 계획하는 등 당장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들떠 있다가 뼈저린 패배 경험을 갖고 있는 삼성은 우승과 관련된 이벤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해외진출의 꿈을 갖고 있던 이승엽과 임창용도 올해만큼은 더없이 신중했다. 시리즈 직후의 거취를 묻는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이들은 "지금은 어떤 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비장한 각오로 그라운드에 나섰다.

한국 시리즈

11월 3일 대구에서 열린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김응룡 감독과 LG 김성근 감독이 선전을 다짐하는 악수를 나누고 있다. 1차전 선발로 출장해 8.1 이닝동안 1실점으로 4-1승리를 이끈 엘비라의 인터뷰 모습 11월 4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 앞서 홈플러스에서 김한수 주장에게 '사랑의 홈런쌀'을 시상했다. 3차전 선발로 나온 전병호는 4회까지 3안타 무실점의 완벽한 피칭을 했다. 4차전에서 7회에 등판한 노장진이 8회말 선두타자 이병규를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삼진으로 잡고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이날의 승리투수. 4차전을 4-3으로 승리한 후. 왼쪽부터 김현욱, 노장진, 마해영. 5차전, 마해영이 1회초 2사 1루에서 좌월 투런 홈런을 치고 홈인하고 있다. 5차전 온 몸으로 주자를 저지하고 있는 브리또의 수비 모습. 6차전, 4회말 1타점 적시타를 치고 나간 진갑용이 박정환의 안타로 홈으로 슬라이딩하고 있다. 5-4로 승부를 뒤집은 삼성. 6차전 9회말 LG 이상훈에게 동점 스리런 홈런을 치고 환호하는 이승엽.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 챔피언 홈런을 날리고 다이아몬드를 도는 마해영. 동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홈인하는 마해영. 20년 불비불명(不蜚不鳴), 雄飛 삼성라이온즈


1차전(11월 3일 대구)
삼성 4-1 LG/엘비라 패/김민기


삼성이 아무리 LG에 비해 전력이 좋아도 단기전은 분위기 싸움에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선발로 나선 엘비라에게 온통 관심이 쏠렸다. 페넌트레이스가 끝난 뒤 줄곧 훈련만 해온 타자들의 경기감각도 문제였다. 출발은 불안했다. LG의 돌품은 1회초 선취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삼성은 1회말 1사 2루에서 3번 이승엽이 중전안타로 2루주자 강동우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곧바로 동점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히어로는 이승엽도 마해영도 아닌 강동우였다. 1998년 10월 16일 LG와의 대구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팬스에 부딪혀 왼쪽 정강이뼈가 부러져 2년을 벤치워머로 보낸 불운의 스타 강동우는 1-1로 팽팽히 맞선 5회말 오른쪽 담장을 빨랫줄처럼 넘어가는 역전 2점 홈런을 폭발시켰다. 엘비라의 피칭은 눈부셨다. 엘비라는 8과 3분의 1이닝동안 LG타선을 4안타 1실점으로 꽁꽁 묶었다. 삼성으로서는 제 1선발의 건재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1승 이상의 큰 수확이었다.

2차전(11월 4일 대구)
LG 3-1 삼성 : 승/만자니오 세/이상훈 패/임창용


확실히 야구는 알 수 없었다. 1차전 승리로 상승세를 탈것으로 보였던 삼성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팔을 입고 나온 LG 외국인투수 만자니오의 투혼에 속수무책이었다. 3회말 4구 3개를 골라 만든 1사 만루에서 3번 이승엽이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날려 선취점을 뽑았지만 6회 마해영의 우전안타가 나올 때까지 만자니오의 '반팔피칭'에 무안타로 눌렸다. 선발 임창용도 5회까지 1안타로 막아냈지만 6회총 조인성에게 동점홈런을 허용한 뒤 구위가 흔들렸다. 다시 연속안타를 맞아 2점째를 내줬다. 9회까지 1안타로 허덕인 삼성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상대적으로 LG는 원정경기에서 1승 1패를 거뒀다는 사실에 상당히 고무돼 있었다. 삼성은 긴장된 분위기로 잠실 원정길에 올랐다.

3차전(11월 6일 잠실)
삼성 6-0 LG : 승/배영수 패/최원호


위기였다. 선발로 내세운 왼손 전병호는 주로 중간계투로 활약한 '깜짝선발'로 얼마나 버텨줄기가 의문이었다. 믿을 건 방망이뿐이었다. 반면 LG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좋은 피칭을 보여준 최원호를 내세워 역전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전문가들이 조심스럽게 LG를 눈여겨본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야구는 예상대로 되지는 않았다. 1이닝만 막아줘도 다행이라던 전병호는 4회까지 3안타 무실점의 완벽한 피칭을 했다. 2차전에서 1안타로 눌렸던 타선도 1회초부터 폭발했다. 1회초 마해영의 중전안타와 양준혁의 우전안타, 김한수의 중전안타, 진갑용의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단숨에 4점을 달아났다. 전병호에 이어 5회에 등판한 배영수는 5이닝을 2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역투를 했다. 김응룡 감독의 탁월한 용병술이 빛난 순간이었다. 타선에서는 강동우가 1차전에 이어 5타수 3안타로 톱타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브리또는 3타수 3안타 2타점을 펄펄 날았다. 지난해까지 1승 1패에서 3차전 승리팀의 우승확률이 100%였던 점을 감안하면 삼성의 첫 우승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4차전(11월 7일 잠실)
삼성 4-3 LG : 승/노장진 패/이상훈


피말리는 대접전이었다. 삼성은 1회초 마해영의 우월 2루타와 김한수의 밀어내기 4구로 먼저 2점을 뽑은 뒤 2회초 다시 마해영의 중전안타로 1점을 보탰다. 그러나 LG도 2회와 3회 차근차근 따라붙은 뒤 5회초 박용택의 좌중간 2루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결단이 필요했고, 김응룡 감독은 5회 선발로 내정된 임창용을 등판시키는 승부수를 띄웠다. 중간계투싸움에서 승부가 갈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임창용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7회 마운드를 노장진에게 넘겼다. 부담이 따랐다. 필승카드를 내세우고 패한다면 시리즈 판도가 뒤바뀔수 있는 작전이었었다 LG도 7회 이상훈을 투입하며 필승의지를 보였지만 7회말 무사만루의 역전찬스가 무산되면서 승운이 삼성쪽으로 돌았다. 운명의 8회초, 선두 2번 박한이가 우중간 2루타로 포문을 열고 3번 이승엽의 2루수 땅볼로 1사 3루. 다음타자는 4번 마해영으로 이상훈과는 고려대 시절 단짝친구였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볼카운트가 2-2까지 가는 신경전이 펼쳐졌다. 이상훈의 제 5구가 들어오자 마해영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고 타구는 좌중간 펜스를 맞히는 결승안타. 3루 주자 박한이가 홈을 밟아 스코어를 4-3으로 만들었다. 이후 노장진의 호쾌한 투구에 LG타자들은 더 이상 득점없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5차전(11월 8일 잠실)
LG 8-7 삼성 : 승/이동현 세/장문석 패/배영수


두 팀 모두 선발투수가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에 타격전은 불가피했다. 삼성이 1회초 마해영의 좌월 2점홈런으로 앞서나갔지만 LG는 1회말과 3회말 각각 2점을 뽑아내 흐름을 바꿔놓았다. 우승에 1승만 남겨놓은 삼성도 4회초 3안타를 몰아쳐 가까스로 4-4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중간계투가 무너졌다. LG는 6회말 전병호의 폭투로 1점을 달아나고, 7회말에도 3안타를 삼성의 실책과 묶어 2점을 또 챙겼다. 스코어는 7-4로 벌어졌고, LG가 8회말 추가점을 뽑자 삼성은 게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9회초 마해영은 이상훈으로부터 좌중월 3점홈런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고조됐지만 계속된 1사 1,2루에서 후속타 불발로 추격은 아쉽게 멈췄다. 3승 2패. 너무나 아쉬운 패배였기 때문에 충격은 두 배로 컸다.

6차전(11월 10일 대구)
삼성 10-9 LG : 승/강영식 패/최원호


1승을 앞서고 있었지만 쫓기는 삼성이 더 불안했다. 또다시 패한다면 7차전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누구도 웃지를 않았다.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김응룡 감독은 한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지그재그 타선을 뽑아들었다. LG 김성근 감독의 변화무쌍한 투수교체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난타전이 벌어졌고 삼성은 4회말 진갑용과 박정환의 연속안타로 2점을 뽑아 승부를 5-4로 뒤집었다. 그러나 LG가 6회초 3득점으로 역전에 성공한 뒤 8회초 다시 2점을 보태 9-5로 달아났다. 삼성이 8회말 김한수의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따라 갔지만 3점차를 뒤집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임창용과 엘비라가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6차전은 포기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짜릿한 역전드라마는 9회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승리를 확신한 LG는 8회부터 이상훈을 등판시켰다. 선두타자 8번 김재걸이 중월 2루타로 포문을 열었다. 1번 강동우 삼진. 2번 브리또가 4구를 골라 1사 1, 2루. 타석에 3번 이승엽이 들어섰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8회까지 20타수 2안타로 부진한 '종이사자' 그러나 스타는 위기에서 빛났다. 이상훈으로부터 우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동점 3점홈런을 뽑아냈다. 역전 시나리오의 예고편에 놀란 대구구장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하이라이트는 4번 마해영이었다. LG는 마해영에게 약한 이상훈을 불러들이고 최원호를 등판시켰다. 하지만 사자군단의 상승세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마해영은 볼카운트 1-1에서 제3구 직구를 오른쪽 펜스 너머로 날려버렸다. 포스트시즌 통틀어 첫 9회말 랑데부홈런이었고, 한국시리즈 사상 첫 챔피언홈런이었다. 기적의 역전승이 벌어진 대구구장은 환호성과 눈물이 범벅을 이뤘고, 마해영은 6차전 동안 24타수 11안타 10타점을 쓸어담아 기자단 투표에서 77표 만장일치로 MVP에 뽑혔다. <한국시리즈 출전선수 명단>
감독 : 김응룡
코치 : 유남호 김종모 조범현 양일환 박흥식 류중일
투수 : 임창용 엘비라 김현욱 전병호 노장진 오상민 라형진
정현욱 배영수 강영식
포수 : 진갑용 현재윤
내야수 : 이승엽 김한수 김재걸 김승권 박정환 조동찬 브리또
외야수 : 양준혁 마해영 김종훈 강동우 장영균 임재철 박한이

이승엽·마해영의 '이마포'가 터지는 순간 그라운드 뒤에서는 작은 흐느낌이 터졌다. 신필렬 대표이사부터 현장의 말단직원까지 프런트 모두의 머리 속으로 '우승도 못한 종이 사자'라는 비웃음을 속으로 삭혀야 했던 20년 동안의 무수한 괄시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삼성은 국내 최고의 명문구단이면서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한 '죄'로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는 설움을 톡톡히 받았다.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지나친 집념은 때로 정도가 아닌 편법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대구는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포스트시즌이 끝난 뒤에는 칼바람이 끊이지 않았다. 야구의 특성을 간과한 왜곡된 '제일주의'의 오류였다. 그러나 삼성은 2002 시즌 명문구단으로서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삼성 서울병원 행정부원장 출신으로 전문가 집단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신필렬 사장과 창단 멤버로 야구단의 특성을 꿰뚫고 있는 김재하 단장은 지난해부터 큰 틀에서 개혁을 단행했다. 맨 먼저 야구를 감독과 선수들에게 돌려줬다. 감독을 통제하고, 선수를 감시하는 종전의 행태에 과감히 칼질을 하면서 '야구는 선수가, 프런트는 지원'을 다짐했다. 사장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던 감독과 코치, 선수들은 비로소 확고한 자기 위치를 갖게 됐다. 삼성은 '프런트와 현장의 분리 원칙'과 함께 투명경영을 실천에 옮겼다. 모든 업무는 공개적으로 처리했고, 정책의 입안과 추진은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를 밟았다. 결국 구단의 두 가지 방침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큰 밑거름이었던 셈이다.

이제 삼성은 20년 동안 이어져왔던 도전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국내 프로야구 발전의 길잡이로서 삼성의 앞날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년 불비불명(不蜚不鳴), 雄飛 삼성라이온즈
그랬다.
20년을 조용히 기다렸다 일순 날개를 편. 한 마리 거대한 새와 같았다.
꿈만 같았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가슴엔 뜨거움이 북받쳐 올랐다.
누구랄 것 없이 울음부터 토해내는 기쁨-
차마 믿어지지 않는 감격이었다.
눈물이 이내 환호성으로 바뀌고
'최강 삼성'의 연호가 운동장을 울린다.
갈망이 클수록 기쁨도 크게 마련.
절정의 환희는 소리로 몸으로 터져나온다.
서로를 얼싸안고 진한 축하의 인사를 나눈다.
오늘을 위해 참으로 오래 서로의 땀을 섞는 우리들이 아닌가.
생애 최고의 날-
바로 이 순간. 짜릿한 승리의 맛을 만끽하는 것은 승자만의 특권이다.
이 날의 감격은 가슴속에 오래오래 자리할 것이다.
한 경기 한 경기마다 승리와 패배가 엇갈리며 걸어온 2002년의 대장정.
그 마지막을 극적인 승리로 이끈 우리는 2002년 가을의 전설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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